수학 전공과 졸업생들의 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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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의 동물, 용

여자친구랑 헤어졌다고 교수님께 말씀드렸다. 그러자 교수님은 “그 여자 똑똑하네”라고 말씀하셨다. 수학을 전공하는 제자의 미래가 확실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어느날 학생은 교수님께 물었다. “교수님, 이렇게 어렵고 추상적인 현대 수학을 공부한다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나요?” “수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음… 그러니까… 말하자면, 용을 잡는 법을 배우는 것 같이 위대한 일이지.”라고 하셨다. 그래서, 그는 용을 잡는 위대하고 오묘한 법을 배우고 익혀서 졸업했는데..… 문제는…상상의 동물 ‘용’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교수님이 말씀해 주신 것처럼, 그는 어린 학생들에게 ‘용’ 잡는 법을 가르쳐주겠다고 말하는 수학 선생이 되었다고 한다.’ (https://mathnmath.tistory.com/41)

인터넷에서 위의 글을 읽고, 수학을 전공한 필자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야기가 황당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공감이 갔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쓴 사람은 수학에 대해서 잘 알고, 수학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느껴졌다. 하지만, 필자는, ‘수학과 졸업후 진로’에 대한 인터넷 글과는 다른 생각과 경험을 가지고 있다.)

대학(경희대 문리과 대학 수학과)에서 전공 수학과목을 공부할 때, 금방 이해가기가 되지 않는 추상적 개념 속에서, 순수하고 아름답고 위대한 인류의 지적 이성(理性)을 느끼는, 즐거움을 가질 수 있었다. 다만, 고등학교 때나 대학 1, 2학년까지 수학은 어떤 곳에 활용할 수 있는지를 대충이라도 이해할 수 있었는데 반해서, 전공 수학의 경우에는, 엄밀하고 추상적인 수학의 정의(definition, 定義)부터, 추론의 전개와 정리들의 구체적인 활용에 대해서는 상상하기가 쉽지 않았다.

수학 전공자의 진로

최근에 학부를 졸업하는 수학 전공자들이 일반적으로 진출하고 있는 분야는, 중고등학교 교사, 사설학원강사, 금융, IT 등이다. 이런 분야는, 특별히 전문직이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예를 들어서, 금융 쪽에 취업하는 수학 전공자들의 position은 대부분 일반은행의 영업점부터 본부의 행정직으로, 전문적인 외환딜러나 펀드운용 전문가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수학 학부를 졸업한 후 곧바로 진출할 수 있는 전문 분야로는 보험회사 상품개발, 즉 보험계리 분야이다. 특히, 공인시험에 합격한 ‘보험계리사’의 경우, 전문직으로 인정받고 안정된 직위로 일을 할 수가 있다. 더욱이, 캐나다나 미국의 경우, Actuary (보험계리사) 시험은 최고 인기 전문직 자격 시험 중 하나이며, 10단계(과목 )로 나누어져 있다. 이 중에서 대략 5개 과목이상 합격한 수학/통계학 전공자들은 취업이 용이하고, 높은 연봉을 받을 수 있다.

수학 전공자는 Actuary외에도, Mathematical Modeling, Mathematical Finance, Cryptography, Data Science, Bioinformatics 등과 같은 전문분야에 진출하기가 다른 전공자들에 비해서 훨씬 더 용이하다. 왜냐하면, 이런 분야는 거의 모든 이론과 기술이 고급 수학과 통계학의 활용,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부에서 그냥 수학이나 통계학을 전공했다고해서, 쉽게 이런 분야의 전문적인 일을 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일단 수학을 학부에서 공부한 후, 해당 분야의 ‘전문대학원’에서 공부하는 것이 훨씬 더 접근하기 쉬운 방법이다. (캐나다의 워털루 대학의 경우 수학과 대학원은 물론, 학부에서도, 위에서 언급한 대부분의 분야 세부 전공 프로그램을 공부할 수 있다.)

그냥… 필자처럼 특별한 취업준비 없이 수학과를 졸업하면….

전문직을 위한 특별한 준비 없이 그냥 수학과를 졸업한다면, 수학 교육에 종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한다. 사실, 중고등 학교 교사가 되려면, 교직 프로그램(미국이나 캐나다의 경우 교육대학원 단기 프로그램)을 이수해야 하지만, 그것 때문에 교사가 되는 것이 어려울 것은 없다. 만약, 교육학을 이수하지 않았거나 여러가지 이유로 공사립학교 교원이 되지 않더라도, 수학과 졸업생들이 사설 학원 강사가 되는 것은 전혀 어려울 것이 없다. (물론, 학원강사들의 수입 차이는 매우 크다.)

하지만, 의외로 수학과를 졸업하고 교직으로 가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별다른 전문직이나 취업 준비없이 수학과를 졸업한 필자의 경우를 예를 들어보자. 3학년까지는, 대학원 진학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삼성보다 연봉이 높은 ‘농협중앙회’ 중견직원 공채 광고를 보게 되었다. 특히, 입사시험(영어 100점, 전공 100점, 전공논술 100점)에 전공 시험 비중이 높은 것이 눈에 띄었다. 1년 뒤 4학년 때, 여전히 대학원 준비를 하다가, 농협중앙회 공채 광고를 다시 보았고, 결국 입사 시험에 응시해서, 98:1이라는 경쟁을 뚫고 운좋게 합격을 했다.

입사 후, 내 전공에 따라, 공제(共濟) 금융상품개발과(=보험계리과)에서 일을 할 수 있었지만, 당시 IT 붐과 인사부의 권유로, 소프트웨어 개발, Business System Analyst, 유통/물류 IT기획 쪽에서 일을 했고, 결국 Business System Analyst분야의 Skilled worker 자격으로, 캐나다에 이민을 오게 되었다.

지금와서 생각해 보면, 당시에 보험계리 분야에서 일하면서, 어차피 가게될(?) 이민을 염두에 두고, 일찌감치 미국/캐나다 Actuary 시험을 한 개씩 차근차근 도전해 왔다면, 굳이 캐나다에서 MBA 학위를 따느라 시간과 돈을 낭비하지 않았을 것이고, 아마도 지금 빅토리아에서 ‘입시학원’을 하고 있지는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수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이민와서도, 문화와 인종이 다양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수학에 관련된 일을 계속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 따지고 보면, 졸업 후 입사시험에서 전공(수학과 논술) 과목 덕을 보았고, GMAT 시험에서도 수학점수에 살짝 힘 입어 가고 싶은 MBA프로그램에 어렵지 않게 합격한 점, 그리고 현재 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치는 일 등이 모두, 수학을 공부한 결과였다.

캐나다와 미국에서 수학을 공부한 필자의 자녀들

필자의 첫 째 딸은 워털루 대학 수학학부 Math/Chartered Accountant 프로그램에서 수학학위와, 대학원에서 회계학 석사학위를 받은 후, 버뮤다와 뉴욕 PwC에서 Auditor (회계감사)로 일을 하다가, 최근에는 Actuary로 직종을 바꾸었다. 대학 때, 수학학부에서 Actuary (보험금융) option과 부전공으로 경제학을 공부했고, 졸업 후 몇 개의 Actuary 시험에 합격했기 때문에 직종을 바꾸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다시 말해서, 수학을 전공하면서, 회계, 경제, Actuarial Science를 함께 공부한 경우, 다양한 진로에 진출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둘 째의 경우는, 뉴욕 콜롬비아 대학에서 응용과학 학부 즉. 공학부에서 OR (Operation Research)을 전공하고, 경제학과 벤처(Venture, Entrepreneurship)를 부전공 했다. 콜롬비아 대학의Operation Research 전공은, 기계나 전자, 화학 등과 무관한 수학과 통계의 한 분야로, 다른 대학들의 경우 OR은 수학학부에 속해 있는 경우도 많다. OR 전공 졸업생들의 진로는 금용공학(Financial Engineering) 또는 IT 분야 등에 많이 진출을 한다. 따라서, 졸업 후, 금융과 IT 두 분야 취업에 모두 가능 했지만, 현재 AT&T계열의 뉴욕 IT회사에서 System Analysis/Data Science쪽 일을 하고 있다.

혹자들은 전공과 함께 몇개의 부전공을 함께 이수하는 것이 어렵지 않은지 궁금해 할 수 있다. 사실, 부전공은 많은 과목을 요구하지 않는다. 공대처럼 필수적으로 수강해야할 과목이 상대적으로 적은 수학과의 경우, 전공 선택과목을 특별히 많이 수강하지 않는다면, 어렵지 않게 부전공을 할 수 있다.

물론, 부전공 쪽으로 취업을 하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에 부전공이 무용(無用)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순수수학으로 박사학위까지 갈 생각이 아니라면, IT나 경제학 등의 부전공을 통해서, 수학과 부전공이 함께 관련된 분야의 자격시험이나 취업 또는 전문대학원 진학을 준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수학과를 졸업한 후, 최근 각광받는 Quant 관련 Finance나 Marketing, Bioinformatics, 또는 Data Science와 같은 전문직은 학부 교육만으로는 도전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해당 분야 대학원에 진학한 후, 원하는 분야에 진출하는 것이 접근하기가 쉽다. 이런 분야는, 경영, 경제, 생물, 컴퓨터 전공자들의 수학 실력으로는 접근하기 힘들기 때문에 수학 전공자에게 훨씬 더 잇점이 많다.

대학원 진학을 고려하지 않는 수학과 학생들이라면, Actuary, 즉 보험계리사 시험에 도전하는 것을 권한다. Actuary 시험은 수학/통계 과목으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경제학 등 비수학 전공자들이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수학은 ‘용’을 잡는 학문이다.

수학은, 실제는 존재하지 않고 인간의 무한 상상 속에 살아있는 ‘용’을 잡으려는 법을 연구해 왔다. 수학의 연구 대상은 실체적 자연이나 사회가 아니라, 인간의 상상 속에 존재하는 수학적 공간과 문제를 연구하는 ‘수리 철학’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4차 산업을 주도하는 ICT (Information and Communication Technology) 분야의 High Tech는, 실체적, 물리적 자연의 힘을 뛰어넘어, 인간의 지력(智力)으로 발명된 수학적 아이디어와 수학적 이론의 활용이다. 이제, 수학은 상상 속의 ‘용’을 잡아서 실체적으로 보여주는 인류의 가장 위대한 학문이라 것을 더 이상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The moving power of mathematical invention is not reasoning, but imagination. (수학적 발견의 원동력은 논리적 추론에 있는 것이 아니고, 그 상상력에 있다).’ – August De Morgan (드모르강, Jun. 1806 ~ Mar. 1871)

2019년 5월 7일

송학원장 송시혁  

Victoria, 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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